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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제

"수궁가 속 '토끼' 아들 모험담.. 소박하게 채운 우리소리 만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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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트라맨8Lv 116
조회 수767

여기, 땅도 하늘도 싫다며 제 발로 바닷속 수궁을 찾아가는 토끼가 있다. 용왕님께 토끼 간을 바칠 생각에 자라는 신나지만, 수궁 상황은 그의 바람과는 다르게 흘러간다. 웅장한 국악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병마사 주꾸미와 형집행관 전기뱀장어 등 각양각색 수중 생물들의 소리와 몸짓이 훅 펼쳐졌다가, 훅 사라진다. 1년 만에 돌아온 국립창극단의 창극 ‘귀토’는 그야말로 “우리 소리의 모든 것이 들어있는 소리의 만물상”(연출 고선웅)이다. ‘귀토’의 주인공은 ‘수궁가’ 토끼의 자식인 토자. 육지에서의 8가지 재난-‘팔란(八難)’에 환멸을 느낀 토자는 “하늘도 땅도 싫소”라며 다른 세상을 꿈꾸고, 때마침 자라를 만나 자신의 짝인 토녀와 함께 새로운 세계인 수궁으로 향한다. ‘귀토’는 토끼가 ‘어쩌다’ 용궁으로 갔다가 탈출해 육지로 돌아온다는 점에서 원전인 ‘수궁가’와 같다. 그런데 토끼가 용궁으로 가게 된 이유인 ‘어쩌다’가 ‘수궁가’와 다르고, 여기서부터 완전히 다르게 풀려나간다. 지난 17일 서울 국립극장에서 만난 고 연출은 “토자는 자력으로 바다에 가기를 원했고, 그곳에서 자신이 떠난 땅의 소중함을 깨닫고 돌아온다”며 “물이나 뭍이나 거기서 거기란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육지에서의 팔란과 수궁에서의 팔란이 중첩되며, 어디에나 어려움이 있으니 지금 우리가 딛고 선 세상에서 희망을 찾자는 메시지다. 교훈적 메시지만 보고 따분한 우화일 거라는 예상은 시작부터 빗나간다. 용궁을 탈출한 토부가 자라를 훈계하는 첫 장면부터 원작인 ‘수궁가’를 전복시켜 웃음을 자아낸다. 공옥진 선생의 움직임에서 착안해 각 동물의 습성을 양식화한 움직임은 해학미를 배가시킨다. 흔한 토끼 탈 없이 손을 오므리며 깡충깡충 뛰는 모습만으로 토끼고, 등딱지가 없어도 엉금엉금 다니면 영락없이 자라다. 주황색 천을 펼쳐 옆으로 다니면 꽃게고, 웨이브 춤을 추며 움직이면 전기뱀장어다. 고 연출은 “토끼 귀 붙이고 토끼 탈 쓰면 오히려 우스꽝스럽다”며 “토자가 패랭이만 쓴 채 깡충깡충 뛰면서 ‘어매 어매’ 하면서 달려가는데 저게 토끼 아니면 뭐냐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 같은 느슨함은 모든 것이 짜인 뮤지컬과 다른 우리 창극 특유의 매력이다. 고 연출은 “‘짱뚱짱뚱’ 하면서 움직이면 관객들이 ‘저건 짱뚱어구나’ 하고 관대하게 넘어간다”며 “뮤지컬이 관객과의 줄다리기라면, 창극은 관객들과 소리꾼이 한편이 돼 움직인다”고 설명했다. “창극은 우리 소리라 그런지 창작 작품이라도 우리 내면에서 쭉 내려왔다는 느낌을 준다. 말에 여백이 있어도 관객이 알아듣고 좋아한다.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된다. 저절로 조여지고, 저절로 풀어진다.” 연출 역시 소박하게 덜 채워 소리의 매력을 살렸다. 토자가 새로운 세상인 바다를 처음 목격하는 ‘망해가’ 대목이 대표적이다. “푸르르르르 포우, 싸르르르 쏴아” 같은 의성어·의태어로만 이뤄진 가사에 일렬로 선 코러스들이 무릎을 굽혔다 펴며 파도치는 모습을 표현한다. 바닥에 있는 LED 패널이 물결치는 파도 영상으로 가세하지만, 기본적으로 코러스들의 소리와 동작만으로 바다가 느껴져 놀라움을 준다. 작품은 지난해 초연에 비해 산중 장면을 대폭 줄이고, 수궁 비중을 늘렸다. 주꾸미의 도움으로 토자와 토녀는 바닷속에도 육지와 같은 ‘팔란’이 있음을 보이고, 토끼와 자신들의 처지가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 수중 민심은 동요한다. 색다른 결말로 향하는 동안 삽입된 처용가·공무도하가·오르페우스 신화는 이질감 없이 극 속에 녹아든다. “소리가 할 수 있는 웬만한 것들은 다 들어 있는 소리의 만물상이라고 부르고 싶어요. 작품 속 ‘팔란’은 우리 현실에서도 반복되고 있는 만큼, 무릎을 탁 치고,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볼 수 있는 요소가 많아 오래도록 잘될 것 같습니다.” 공연은 이달 31일부터 내달 4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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