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제복지원 생존자 "바지 벗기고 성기 지져 고문… 원생 열에 일곱 어디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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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웅 아나운서(이하 이현웅): 1부, 이슈 인터뷰로 시작합니다. '부산 형제 복지원 사건'이 국가의 부당한 공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 침해라는 사실이 공식 인정됐습니다. 형제 복지원 사건이 알려진지 35년만의 일인데요, 정부기관이 처음으로 국가폭력에 의한 인권유린을 인정한 겁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형제복지원의 설치와 운영 과정에서 국가의 지원과 묵인이 있었다는 사실이 정부 자료를 통해 확인됐다면서 국가가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라고 권고하기도 했습니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로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고공 단식농성까지 벌였던 최승우 씨가 스튜디오에 나와 계십니다. 안녕하십니까?
◆ 최승우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이하 최승우): 안녕하세요. 저는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최승우입니다.
◇ 이현웅: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1호 사건이었고, 조사에 착수한지 1년 3개월 만에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어떤 마음이셨는지 저는 가늠하기도 어렵지만, 어제 발표 내용을 들으면서 어떤 마음이셨어요?
◆ 최승우: 2014년도부터 이 활동을 시작해서, 피해당사자들의 운동이었죠. 그러면서 2017년도에 제가 한종선 대표와 국회 앞에서 노숙 농성하면서 2022년도에 법이 통과될 때까지 국회를 들락날락하면서 어떻게든 법을 통과시키려고 최선을 다헀습니다. 결과에 대해서 과거사위원회가 발족이 됐고 1차적인 결과, 형제복지원에 대한 피해생존자로서 인정을 받는 거거든요. 그래서 사실 감회가 새로웠고 한편으로는 우려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이현웅: 어떤 우려가 되셨나요?
◆ 최승우: 지금까지 거의 8~9년을 힘들게 피해생존자들이 활동해서 결과를 만들어냈지 않았습니까? 그 기간이 상당한 기간이었죠. 과거사위원회에서 1차 발표를 냈지만, 앞으로 2차, 3차에서 밝혀야 할 진실들이 많아요. 그러면 재판과정도 있고 저희들이 일단 명예회복을 받아야 되겠죠. 명예회복을 어느 정도 받아야지만 국가소송이 진행되니까 그 시일이 짧은 시일이 아니라는 거죠. 그게 또 한편으로 우려스럽다는 것입니다.
◇ 이현웅: 1년 3개월 동안의 조사가 있었고 여러 가지 새로운 사실도 공개됐습니다. 그중 하나가 사망자수가 알려졌던 것보다 백여 명 많아져서 657명으로 집계됐는데, 현장에 계셔서 직접 목격하신 것도 있으니까 2차, 3차 때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는 겁니까?
◆ 최승우: 과거사위원회에서 1차 발표를 하면서 사망자가 백여 명이 늘어났습니다. 사실 저는 피해생존자라서 당사자이지 않습니까? 그 안에서 그런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들을 목격했기 때문에 지금 발표한 내용은 소수에 불과하다, 더 많은 사망자가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 이현웅: 국가의 사과를 권고했는데 이 사과를 할 주체를 명시하거나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국가의 사과, 누구의 사과가 있어야겠습니까?
◆ 최승우: 국가라고 이야기함은 현재 존재하는 정부를 이야기하는 거죠. 과거사위원회가 사실은 정부지 않습니까? 독립적 기구고, 정부가 과거사위원회를 폐지하면 안 되는 거예요. 정부에서 사과를 했지만 현 정부의 책임도 있다라는 거죠. 대통령만 바뀐 것이지, 정부는 그대로이기 때문에 국가가 현 정부가 피해생존자의 공식적인 입장을 발표하고 부랑민에서 사람으로, 명예회복을 받아야 되는 거죠.
◇ 이현웅: 여의도 국회에서 고공 단식 농성도 하셨습니다. 당시 상황이 어땠나요? 얼마나 오래 하셨죠?
◆ 최승우: 그 당시 2017년도 11월 6일부터 농성을 시작했어요, 국회 앞에서. 노숙 농성을 시작하다가 19대 국회에서 형지복지원 특별법이 마지막에 폐기가 되어 버려요. 그래서 2022년도에도 계속 노숙 농성을 하는 과정에서 포괄적 국가폭력에 관해서 전반적으로 2기 진실화해위원회를 열기로 서로 국회의원들과 얘기가 됐었고, 화해의 법을 만들려고 2019년 11월에 지하철 꼭대기에 올라가서 고공 단식 농성을 24일 동안 했어요. 그 당시에 국회의원들이 법을 통과시키지 않으려고 여야가 서로 상성이 안 됐던 시기였거든요. 그래서 5월에 국회의원회관 꼭대기를 올라가게 됐던 거죠. 제가 올라가게 된 계기는 무엇보다 당시 야당의 김무성 대표를 만나야 되겠다, 김무성 대표님께서 정치 생활을 오래하셨기 때문에 중재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했고요. 그러면서 김무성 대표가 홍익표 의원을 불렀고, 극적으로 김무성 대표님이 여야 간 합의를 이뤄내서 저희들이 당시 원내대표였던 주호영 원내대표에게 찾아가서 과거사위원회에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국가배상법 38조를 빼고, 당시 주호영 원내대표가 말씀하셨어요. 지금 국가배상 특별법이 무엇이 필요하냐, 일단 과거사위원회에서 조사를 하고 차후에 국가배상특별법을 만들자고 합의되어서 법이 통과가 됐던 거죠.
◇ 이현웅: 어제 기자회견을 통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내용들이 많이 포함돼 있었죠?
◆ 최승우: 그 안의 실상들은, 일반 소대가 있었고 아동소대, 여성소대, 가장 중요했던 게 정신병동이 있었어요. A, B, C동이 있었는데 일반소대는 말 안 들으면 폭행 당해서 맞아 죽는 사람들이 비일비재했지만 정신병원에 있었던 사람들이 대부분 굶어 죽는다든지 맞아죽는다든지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했어요. 왜냐하면 정신병동에 있는 사람들이 온전하지 않은 사람들이고 가장 다루기 쉬웠던 시절이었죠. 그러니까 박인근 원장은 정신병동에 있는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는 거죠. 굶겨 죽여 버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들은 이름 자체를 삭제를 안 해요. 왜냐하면 한 사람당 정부에서 지원금이 나오기 때문에 사망했어도 어디에 묻어 버리면 그대로 (서류상) 살아있는 거예요. 국가지원금을 받기 때문에 그 안에서의 일들, 인권유린은 더 많은 것들이 있죠.
◇ 이현웅: 김영님께서는 "형제복지원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지금 얼마나 있을까요? 지금 청년들은 상상도 못할 인권유린입니다"라고 말씀해 주고 계세요. 당시를 회상하는 게 어려운 일인 것은 압니다만 청취차 분들도 모르시는 분들이 있을 수 있거든요. 어떻게 해서 가게 됐고, 어떤 끔찍한 일을 겪었는지 간략하게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 최승우: 1982년도에 부산의 중학교를 다녔어요. 그때는 교복자율화가 아니었기 때문에 교복을 입고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개금파출소 앞에서 경찰관 한 명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가 저를 발견했던 거예요. 저를 보고 "너 이리 와 봐" 하기에 개금파출소로 들어갔죠. 당시 때는 내무부 훈령 제410호라고 행색이 초라하거나 불량해 보이면 무조건 잡혔던 법령이 있었기 때문에. 81년도 당시 제가 잡혀갈 때 형제복지원 건물이 완공됐어요. 한창 잡아넣을 때였죠. 그래서 파출소에 들어갔는데 그 안에서 고문이 시작되는 거죠. 왜 고문을 했냐. 제가 먹다 남은 빵이 있었어요. 제가 그때 당시 할머니 밑에서 컸기 때문에 어렵게 살았거든요. 도시락을 안 싸가서 당시 선생님이 빵과 우유를 급식으로 내 줬어요. 우유를 마시고 빵만 남아있었는데 가방에 들어 있는 것을 뒤지고 그 빵을 어디서 훔쳤냐고 계속 이야기하더라고요. 고문이라고 하는 것은, 당시 경찰관들이 곤봉 같은 몽둥이를 차고 있던 시절이었거든요, 그 곤봉으로 엉덩이를 맞고 어깨를 맞고 오만 데를 맞고 그래도 내가 끝까지 "안 훔쳤다" 하니까 자기가 쓰던 라이터를 가지고 달궈서 바지를 벗겨서 성기에 지지기까지 하는 고문을 했던 거죠. 그러면서 "네가 훔쳤다고 얘기하면 바로 집에 보내줄게"라는 한 마디에 너무 무서워서 "예, 제가 훔쳤습니다" 했는데 결국 보내주지 않고 형제복지원에 연락해서 넣어 버렸죠.
◇ 이현웅: 피해자분들이 가장 크게 요구하는 것 중 하나가 트라우마에 대한 치료나 보상인데, 그 부분을 강조하고 계신 거죠?
◆ 최승우: 그렇죠. 저는 실질적으로 서류도 있지만, 보면 트라우마 치료를 2015년도 1월부터 최근 들어서 2022년 5월까지 8년 7개월 동안 받았어요. 치료를 받음으로 인해서 형제복지원 속에서의 인권유린에 대한 생각들은 없어지지 않아요. 사라지지는 않아요. 그러나 트라우마 치료를 받고 나면 그 트라우마를 견디고 이겨낼 수 있는 자립(심)이 생겨요. 그러니까 지금 현재 피해생존자들 보면 대부분 형제복지원 얘기가 나오면 몸이 먼저 반응해요. 몸이 떨리고, 울고, 이게 트라우마 때문이거든요. 국가에서는 트라우마 치료에 적극적으로 부산시에서 나서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 이현웅: 극복하지 못한 경우 안타까운 일도 많이 발생하는 것 같아요.
◆ 최승우: 그렇죠. 제가 아는 친구들이 형제복지원에 굉장히 많았어요. 열 명 중 일곱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거죠. 지금 피해생존자 중 그때 당시 아동이 천 명 가까이 있었는데 대부분 내 또래나 내 밑의 사람들인데 나와 있는 신고자들이 551명, 터무니 없는 인원이잖아요. 그것보다 더 많아야 되는데. 그 사람들 다 어디 갔겠습니까? 스스로 목숨 끊고 아니면 교도소에 있거나 정신병원에 있는 경우가 있는 거죠.
◇ 이현웅: 관련해서 국가 상대 손해배상 소송도 진행되고 있죠? 이번 진실화해위원회 발표가 반영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을까요?
◆ 최승우: 1차적인 발표가 사실 국가정부의 독립적 기구인 과거사위원회에서 발표를 한 게 피해생존자라고 인정한 사례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명예회복과 동시에 우리나라는 국가배상 특별법 자체가 없잖아요. 개별 사건으로 개인이 소송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것들이 있죠. 그래서 아마 소멸시효도 6개월이라는 것이 있고 통보가 날아오면 국가배상은 자연적으로 해야 되겠죠.
◇ 이현웅: 국가의 사과나 권고가 됐습니다만 박인근 전 원장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 다뤄지지 않은 것 같아요. 앞으로 2, 3차 발표에서 이 부분을 다루겠다고 언급했는데 어떻게 나와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 최승우: 제 개인적인 생각은, 현재의 정부가 입장문을 발표하면 과거사위원회가 조사할 수 있는 탄력이 생겨요. 그렇게 되다 보면, 박인근은 죽었어요, 그러나 그의 자식들, 박천광이나 박두선, 딸들 그리고 당시 87년도에 재판을 받지 않았던 임영수 목사. 지금은 수천억 대의 재산을 갖고 호주에서 골프장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부분에 대해서 보상권 청구를 하든지 몰수를 해야 되곘죠. 그런 법을 만들려면 형제복지원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입장문을 밝혀야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 이현웅: 끝으로 정부나 청취자분들에게 말씀하시고 싶으신 게 있다면요?
◆ 최승우: 저는 사실 대한민국 안에서 이렇게 아우츠비츠 수용소 같은 수용 시설에서 인권유린을 받았다라는 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사실 우리나라가 발전했잖아요. 국민들의 인성조차도 위상이 높아졌고. 그러면 과거의 형제복지원 사건을 잊지 말아야 됩니다. 형제복지원 사건을 기억해야 하고. 더 이상 이런 트라우마가 (없게).. 트라우마는 전이가 되거든요. 청취자분들께서도 형제복지원에 대한 많은 관심과 그리고 국회나 정부는 형제복지원이 이슈화 됐을 때 입장 발표 정도는 해야 한다는 바람입니다.
◇ 이현웅: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최승우 씨와 함께했습니다.

형제복지원 생존자 '바지 벗기고 성기 지져 고문, 맞아 죽고 굶어 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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