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 모두 고조선이지만 다른 조선이었습니다.
고구려, 발해, 고려 모두 같은 나라를 계승했지만 다른점이 많은 나라입니다.
아우디도 시대마다 매우 다른 아우디입니다.
(아우디의 전신 Horch 호르히 시절 초호화 인테리어 사진출처 MyAutoWorld.com)
아우디의 역사는 고오오급과 고오성능 차량에서 시작됩니다.
(1909년 독일제국 빌헬름 2세 황제폐하와 그때 60마력을 내던 Horch 사진출처 MyAutoWorld.com)
예를들어 1902-1909년 생산되던 Simplex라는 벤츠 슈퍼카가 있었는데, 그것의 최상위 트림으로 가야 60마력이었습니다. 왕가와 귀족용 차량이었고 디자이너도 마이바흐님이셨습니다.
(Mercedes Simplex 출처 Stories.technik-museum.de)
그런 차의 출력에 호화로운 럭셔리를 입힌 아우디는 개우디가 아니라 진짜 참 럭셔리 회사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우디 옛날 로고는 1이었습니다.
1902년 벤츠가 도입한 표어 Das beste oder nichts 영어로 Best or nothing "베스트 아니면 안하고 만다"를, 아우디는 아예 로고에 대놓고 1등 안하면 안하겠다던 시절이었습니다.
(출처 Webneel.com)
이러던 아우디는 제2차 세계대전 1944년 폭격으로 파괴, 1945년 소련군 점령 등으로 멸망합니다.
(소련이 아우디 빼앗고, 공장 해체하고, 회사 없앴다 출처 아우디 공홈)
소련은 동독을 점령하면서 부와 귀티의 상징이던 아우디를 철두철미하게 없애버린 반면,
부유층 전유물 이미지가 아니었던 BMW의 동독공장은 살려줍니다. 소련과 동독은 서독의 BMW에 대항하여 EMW로 회사이름 바꾸고 로고도 휘황찬란하게 금색 붉은색 사각별로 꾸며줍니다.
(동독의 BMW 출처 Nixon Motor Sport)
동독지역 Zwickau가 본거지였던 아우디는
서독지역 Ingolstadt에서 새출발합니다.
국내성과 평양기반 고구려가 망하고
동묘산 기슭에서 발해가 새출발한 것과 비슷합니다.
회사사명 빼고 남은게 없다시피하여 같은 아우디이지만 같다고 할수 없는 상황이 됩니다.
(동독 Saxony주 Zwickau 출처 Ontheworldmap.com)
(서독 Bavaria주 Ingolstadt 출처 Ontheworldmap.com)
고구려가 발해로 부활한 이유는 말갈족의 도움이 컸습니다.
아우디가 부활한 이유도 이민족의 도움이 컸습니다.
그 이민족중 하나가 벤츠입니다. 벤츠가 1958년 아우디에 관여하여 1965년 손털고 나갈때까지 도움줬으며, 아우디가 2행정 사이클에서 4행정 사이클로 넘어가게 만들어준 것도 벤츠입니다.

100 Things #9: Mercedes-Benz and Audi under one roof | Mercedes-Benz Gr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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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엔진이 2-stroke motor일때의 1962년 F102 모델입니다. 이때 최고출력이 60마력이었다 합니다. 빌헬름 2세 황제님때 이후 얼마만의 60마력입니까?
(출처 einkelscooter.blogspot.com)
(출처 einkelscooter.blogspot.com)
1960년대 외화가 필요했던 한국. 파독 광부님들과 간호사님들이 독일에서 경험한 첫번째 준프리미엄 자동차가 저것이었고
(파독 광부님들 한국출발 출처 1963년 12월 21일 한국일보)
광부님들 기준 월평균 약 650-850 서독마르크를 받으셨으므로 7200 서독마르크 가격(출처 위키피디아)이던 F102를 월급 10달 모으면 장만할 수 있으셨습니다. 오늘날 월급 650-850만원 받는 직장인이 7200만원 차량 뽑는것과 비슷했을 것입니다.
벤츠의 4-stroke 기술이 들어간 F103 출시되던 1965년은 아우디 주인이 폭스바겐으로 바뀌기 시작하던 때이기도 합니다.
제로백 14.8초 72마력 광고에 Auto Union(아우디), Mercedes-Benz(벤츠), 그리고 VW(폭스바겐) 다 써있습니다.
(아우디의 본격적 부활 1965년 F103 광고 출처 Flickr)
부활을 시작했으나 보시다시피 고오오급과 상당히 거리가 있습니다. 벤츠조차 고오오급이 아닌 고급이던 시절입니다.
(1964년 영국의 한 벤츠광고 출처 Carlos y clasicos)
"벤츠가 모두 고가라고 생각드십니까? 벤츠 220과 190 모델들을 단돈 £2000 미만에서 만나보세요!
6기통 220 가격은 £1994이고 4기통 190 가격은 £1692입니다."
당신들 생각보다 저렴하다, 얼른 구매하시라, 벤츠답지 않은 골라골라 장터스러운 광고가 나돌고 있었습니다. 저때 대중 럭셔리 담당 일진은 미국차 캐딜락이었습니다.
(그때의 흔한 캐딜락 광고 출처 Envisioning the American Dream)
(그때의 덜흔한 캐딜락 광고 출처 Envisioning the American Dream)
캐딜락에서 가장 저렴한 보급형 캐딜락이 $4800부터 $5400사이에서 가격 포지셔닝을 했습니다. (출처 www.hagerty.com)
(1960년대 서독마르크 vs 영국파운드 vs 미국달러 출처 https://marcuse.faculty.history.ucsb.edu/projects/currency.htm)
1963년 파독 한국인 월급 650-850마르크
1963년 아우디 F120 가격 7200마르크
1964년 벤츠 190 가격 £1692
1964년 캐딜락 제일 저렴이 보급버전 $4800-$5400
달러로 통일하면
1963년 파독 한국인 월급 $164-214
1963년 아우디 F120 가격 $1814
1964년 벤츠 190 가격 $4727
1964년 캐딜락 제일 저렴이 보급버전 $4800-$5400
(1963년 4단 변속 볼보 P1800 $3995
출처 Jason Fried님 트위터)
(1964년 3단변속 6기통 포드 머스탱 $2368
출처 https://www.stangbangers.com/home/2018/7/18/1964-ford-mustang-print-ad)
(캐딜락 > 벤츠 > 볼보 > 포드 > 아우디에 놀란 코알라)
저랬던 아우디에게 대변신하는 계기가 생깁니다. 그것은 바로 Ferdinand Karl Piëch님의 등장인데,
(아우디를 아나더 레벨로 끌어올린 피에히님 사진출처 Jake's Rolex World)
그분은 포르쉐 가문의 피를 이어받았으나 적통이 아니고 성격도 외골수라 변경에 배치된 인물이었습니다.
피에히님과 아너더 레벨 아우디는 아우디오널님 글들보다 안읽히면 말고, 읽히면 쓰는 편집방향으로 가겠습니다.
(변방을 떠돌다 권좌를 차지하는 대너리스와 존 스노우 출처 비지니스인사이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