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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제

옥천 결혼이주여성들이 쏘아올린 작은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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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트라맨8Lv 116
조회 수728

“돈 몇푼 때문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며 잘 살려고 왔다는 사실을 시간이 증명해주겠지, 나라도 잘 살면 되겠지 하고 믿었습니다. 온몸에 상처를 떠안고 살아가는 친구들을, 결국 자식과 생이별하는 가슴 절절한 이야기를 애써 외면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1년, 2년, 어느덧 1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주여성의 현실은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기로 했습니다. 우리에겐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옥천군 결혼이주여성협의회’를 만들었고, 100명이 넘는 이주여성의 뜻을 모았습니다.”(부티탄화 옥천군 결혼이주여성협의회 회장) 충북 옥천군 결혼이주여성협의회는 2020년 초 이주여성 당사자들이 직접 꾸린 비영리 민간단체다. 현재 옥천군 결혼이주여성 423명 중 120명이 협의회 회원이다. 이 단체 결성은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여겨지던 결혼이주여성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스스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노동력 확보나 혼인율을 높이는 수단으로 취급되기를 거부하고 ‘나’ 자체로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이주여성 권리선언이기도 했다. 결혼이주여성협의회는 지난해 11월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책자를 펴냈다. 표지에는 〈우리가 만든 우리 이야기〉라는 제목이 한국어·베트남어·중국어·일어·영어·태국어·네팔어 등 7개 국어로 적혀 있다. 결혼이주여성들은 이 책을 준비하면서 각자의 고통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혐오의 문제임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7월에는 〈어딘가에는 싸우는 이주여성이 있다〉가 세상에 나왔다. 〈우리가 만든 우리 이야기〉에 올해 6·1 지방선거 당시 협의회가 이주여성 정책을 요구하면서 지역사회에서 펼친 활동, 협의회 결성 과정 등의 내용을 덧붙인 책이다. 결혼이주여성들은 2권의 책이 나오는 과정을 거치면서 더 당당해지고 단단해졌다. 주간경향은 지난 8월 8일 옥천공동체허브 ‘누구나’에서 부티탄화 회장(39)을 만나 협의회를 만든 이유, 이주여성의 삶과 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본인 소개를 부탁한다. “베트남 타이빈에서 태어났고, 2009년 한국에 왔다. 한국에 있던 베트남 친구들의 소개로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을 했다. 국적 취득 뒤 개명하는 경우도 있는데 나는 아버지가 지어주신 베트남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다.” -옥천에서 결혼이주여성으로 살면서 어떤 차별을 경험했나. “많은 사람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아니라 태어난 곳에 더 관심이 많은 듯하다. 피부색을 보며 내가 태어난 나라가 얼마나 가난한지, 집이 얼마나 가난했는지, 그래서 얼마를 받고 시집을 왔는지, 지금도 베트남에 얼마를 송금하는지 아무렇지 않게 물어보곤 한다. 처음 봤는데도 친한 사이인 것처럼 반말을 한다. 한 농민 아저씨가 나를 ‘월남’이라고 부른 적도 있었다. ‘저도 여기서 사는 사람인데 월남이라고 부르지 말고 존중해주세요’라고 이야기했다.” -〈어딘가에는 싸우는 이주여성이 있다〉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대부분의 이주여성들은 집에서 모국어 침묵을 강제당했다. 아이가 한국어를 잘 배워야 한다며 엄마의 언어를 배제하는 것이다. 엄마가 주 양육자임에도 엄마의 언어가 배제된 채 자란 아이들은 엄마와 깊은 소통을 나누지 못하고 결국 이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다.’ “국제결혼가정에서 이주여성이 모국어 쓰는 걸 반대하는 경우가 많다. 엄마가 아이와 모국어로 대화한다고 아이의 한국어 수준이 떨어지는 게 아니다. 옥천에서도 아이가 두가지 언어를 모두 잘하는 사례가 있다. 한 이주여성은 임신했을 때부터 아이와 모국어로 대화했다. 그 아이가 현재 초등학교 2학년인데 학교·학원에선 한국어, 집에서 엄마랑 이야기할 때는 엄마의 모국어를 쓴다. 학교에 들어갔을 때 한국어 수준이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협의회는 어떻게 만들게 됐나.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운영조직 중 하나인) 다문화가족협의회라는 곳이 있다. 그 협의회 회장에게 임원을 하고 싶다고 했더니 그분이 당황하면서 ‘여자는 안 된다’고 했다. 남자(결혼이주여성 배우자)만 의견을 내고 결정할 권한이 있다면 다문화가족협의회가 아니라 ‘다문화남편협의회’ 아닌가. 당사자인 이주여성을 존중하지 않는 구조가 너무 답답했다. 남편들을 통하지 않고 직접 우리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생각해 결혼이주여성협의회를 꾸리게 됐다. 지역사회에서 결혼이주여성들이 당사자 단체를 만든 건 처음인 걸로 안다. 아직 사무실 공간, 인건비, 활동비도 없고 열악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제 다문화 관련 행사에서 우리에게도 발언권이 생겼다.” 2019년 6월 11일 당시 정헌율 전북 익산시장은 다문화가족 대상 행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생물학적·과학적으로 얘기한다면 잡종강세라는 말도 있지 않으냐. 똑똑하고 예쁜 애들을 사회에서 잘못 지도하면 파리 폭동처럼 문제가 될 수 있다.” 이 발언이 알려지면서 사회적 논란이 커졌고, 2주 뒤인 6월 25일 시민사회단체들이 익산시청 앞에서 시장 발언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철효 전북대 사회과학연구소 전임연구원 등이 지난해 발표한 논문(‘결혼이주여성의 수행적 시민권: 익산시장 이주민 비하 발언 규탄 시위의 경험’)에 따르면, 행사를 기획한 단체들이 예상치도 못할 만큼 많은 수의 결혼이주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고, 기자회견은 분노와 항의를 표출하는 집회와 시위로 순식간에 확대됐다. 이를 두고 ‘결혼이주여성들이 집단적으로 무엇인가를 요구하며 사회에 등장한 최초의 순간’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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